"청년 마음건강 예산 2배 늘었는데" 실제 상담받은 사람은 5% 미만인 이유
2025년, 정부는 청년 마음건강 예산을 전년 대비 2배 증액 편성했다. 언론은 "역대 최대 규모"라며 호의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실제로 정신건강 상담 서비스를 이용한 청년은 대상자의 4.8%에 불과했다. 예산은 두 배 늘었지만, 상담 문턱은 여전히 높았다. 이 숫자가 말해주는 것은 단순한 예산 부족이 아닌, 접근성의 구조적 붕괴다.
카운터 너머의 벽: 이용 절차의 복잡성
상담 신청까지 10단계를 거쳐야 한다면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상담을 받기 위해선 먼저 전화 또는 온라인 예약, 초기 전화 상담, 방문 접수, 심리 평가, 대기 명단 등록, 다시 전화, 1차 상담 일정 조율 등 최소 7~10개의 절차가 필요하다. 우울감으로 에너지가 바닥난 청년에게 이 절차는 거의 극복 불가능한 장벽이다. 2025년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상담 신청을 포기한 청년의 62%가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길다"고 응답했다.
디지털 격차의 역설
정부는 모바일 앱과 온라인 접수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정작 상담 예약은 유선 전화로만 가능한 센터가 여전히 70%에 달한다. 청년 세대가 디지털에 능숙하다는 편견은 오히려 온라인 전용 서비스를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왜곡했다. 2026년 초 기준, 청년 4명 중 1명은 "비대면보다 대면 상담을 원하지만, 예약 방법을 몰라 포기했다"고 답했다.
시간과 비용의 이중고: '무료'의 함정
무료 상담은 무료가 아니다
정부가 제공하는 기본 심리 상담은 1회 50분, 보통 4~8회로 제한된다. 그러나 실제로 효과적인 치료는 최소 12~20회가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지배적이다. 무료 상담의 짧은 횟수는 오히려 불완전한 치료를 양산해 "해봤자 소용없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2025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데이터를 보면, 자발적 상담 중단율이 1회 차에 이미 34%에 달한다.
소득 기준의 딜레마
대부분의 정신건강 지원 사업은 소득 하위 50% 이하를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정작 상담이 가장 필요한 청년층은 소득이 불안정해 기준을 증명하기 어렵거나, 부모의 소득으로 인해 대상에서 제외된다. 2026년 3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보고서는 '가구 소득 기준'이 청년 개인의 정신건강 위험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사각지대가 4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사회적 낙인: 가장 단단한 벽
"꾀병 부리냐"는 시선
정신건강 문제를 호소하면 주변에서 "의지 문제" 또는 "예민해서 그런다"는 반응이 돌아온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2025년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청년 10명 중 7명은 "정신과 상담을 받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기 부끄럽다"고 응답했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 수치심이 아니라 취업, 연애, 대인 관계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현실적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직장 내 낙인의 구조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경우 정신건강 문제로 상담 기록이 남으면 승진이나 계약 갱신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2026년 노동연구원의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사업장의 12%만이 '정신건강 휴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실제 사용률은 3%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책이 직장 문화를 바꾸지 못하는 한 예산 증액은 공허한 숫자에 그친다.034
공급과 수요의 미스매치: 양적 팽창의 허상
전문 인력은 줄고 있다
예산은 늘었지만 정작 상담을 진행할 임상심리사와 정신건강사회복지사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임상심리학회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전국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전문 인력 충원율은 58%에 그쳤다. 예산이 지원 인력을 키우기보다 건물 임대료와 행정 인건비로 빠져나가는 '구멍 난 양동이'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지역별 편차
서울과 수도권에 상담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어 지방 거주 청년의 접근성은 더욱 열악하다. 2026년 기준, 광역시와 도 단위의 차이는 상담소 1곳당 담당 인구 수로 2.5배 차이가 난다. 경북 지역의 한 20대 청년은 "가장 가까운 상담소까지 차로 2시간"이라는 말을 남겼다. 예산은 전국 단위로 배정되지만, 실제 서비스는 몇몇 대도시에서만 소수에게 제공되고 있다.
예산이 2배가 되었음에도 실제 이용률이 5%에 머문 이 역설은, 우리 사회가 정신건강을 단순한 '예산 문제'로 환원해버린 오만을 드러낸다. 우리가 진짜 질문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예산을 더 늘리기 전에, 왜 청년들은 여전히 상담소 문턱을 넘지 못하는가? 그 문턱은 복잡한 절차인가, 경제적 부담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가 여전히 '정신과'라는 단어에 붙이는 부끄러움인가?